인물 간 가치관의 충돌
영화를 보다보면 작중에서 인물 간 가치관의 대립,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 다른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이 서로 엮이게 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보인다.
그웬과 마일스 그리고 가족
그웬과 마일스는 부모와의 관계가 아주 비슷하다. 둘의 부모는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며 기조로 삼았던 것을 자식에게도 적용하려 하고 자식은 그런 부모에게 반발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식에게 요구하는 원칙은 '옳은 것'이다. 이 원칙을 지켜오며 지금까지 괜찮은 삶을 구가했으니까.
그웬의 아버지는 원칙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리고 스파이더우먼이 그웬의 친구 피터 파커(리저드)를 죽인 것으로 오해해서 수사를 진행중에 그웬이 자신이 스파이더우먼이라고 정체를 밝히자 그웬을 체포하려고 한다. 피터 파커를 살해한 혐의 이전에 그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얼굴을 가리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스파이더우먼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웬은 거미에게 물려 슈퍼파워를 지니게 되고 아버지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자경단 활동을 해왔지만 아버지는 그런 그웬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웬은 아버지를 떠났다.
마일스의 부모는 이민자 가정이다. 미국 사회에 제대로 된 기반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피가 이어진 대가족들과 뭉쳐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공유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온 그들의 삶의 방식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마일스의 아버지는 곧 경찰서장이 되고, 어머니는 1편에서 나왔다시피 직장에서 돈을 벌고 3인 가족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좁지 않은 집에 거주중이다.
하지만 마일스에게는 이들과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바로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것. 마일스는 이를 밝히면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변할까봐 두려워 이 사실을 계속 숨긴다. 아버지에게 정체를 밝혔다가 체포될 뻔한 그웬이 만류도 한 몫 했다. 이 때문에 자식이 평소에 자신들에게 무엇을 숨긴다는 걸 알고 걱정하고 심란해하던 마일스의 부모는, 스파이더맨 활동으로 아버지의 서장 취임 기념파티에 마저 지각한 마일스에게 화가 나 갈등이 고조된다.
부모 세대가 지켜오던 원칙과, 이에 반발하는 자식 세대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미겔 오하라와 마일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에서 설명하는 멀티버스 이야기는 페이트 시리즈의 인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쪼개진 평행세계라도 [공식 설정]이라는, 어느 세계에서든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자 원칙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들은 어느 세계에서든지 경찰서장의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데 하필 마일스의 아버지가 곧 경찰서장이 된다. 마일스는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구하려 하나 미겔 오하라가 이를 막아선다.
미겔 오하라는 한번 공식 설정을 어긴 적 있다. 가족을 잃은 자신과는 다르게, 스파이더맨이 아닌 다른 세계의 자신이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다 범죄자의 총에 맞고 사망하자 죽은 그 세계의 미겔 오하라를 자신이 대신하여 가정을 계속 유지시키며 본인의 바라던 가족과의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는 세계의 원칙을 어긴 행동이었고, 미겔이 가족과 살아가던 세계가 최악의 사태를 맞아 멸망해버리는 결말을 맞이했다.
마일스는 공식 설정을 어기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구하려 하고, 한번 공식 설정을 어기고 파멸을 겪은 미겔은 이를 막으려 해 서로 충돌하게 된다.
원피스의 겟코 모리아가 '동료를 다 잃어버린 루피'를 연상시킨다면 이 영화의 미겔은 '공식 설정을 어기고 세계를 멸망시킨 마일스'를 연상시킨다. 둘은 과거에 같은 선택을 했고, 먼저 선택한 미겔은 확실한 파멸을 맞고 이런 결과를 막기 위해 똑같은 선택을 하는 마일스를 필사적으로 막아선다.
인물 간 갈등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스토리텔링의 정석은 인물 간 가치관을 충돌시키고,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윗 세대와의 갈등 자체를 주제로 삼았다.
이전 작에서는 스파이더맨의 힘을 얻고 계기를 얻으며 성장하는, 마일스의 성장기이자 스파이더맨의 탄생을 주제로 삼았다면 이 작품에선 마일스는 윗세대와의 갈등, 본인의 아치에너미인 스팟과의 갈등, 그웬 등 다른 스파이더맨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이를 해쳐나간다.
어찌보면 이것도 성장물이라 할 수 있겠다. '갈등-성장' 구조의 갈등을 이 영화에서 극대화 하고, 다음편에서는 이 갈등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짝 아쉬웠던 스팟
스팟은 주인공의 아치에너미이지 멀티버스들을 오가는 힘을 지닌 힘을 지닌 빌런이다. 본인이 뚫어낸 구멍을 통해 이 공간 저 공간 이동하는 능력이 다른 세계로 통하는 구멍도 뚫을 수 있어서 멀티버스가 꼬여서 해결하려는 스파이더맨들 입장에선 희대의 빌런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MCU를 인피니티 워 이후로는 보지 않아서 인피니티 워 이후의 스파이더맨은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친구와 이번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 그 영화의 내용을 알려줘 알게 됐다. 친구가 말해준 내용 중에 스팟의 능력이 왜 멀티버스에도 구멍을 뚫어버리는 사기적인 능력을 지니는지 짐작이 갔다.
인피니티워 이후에 나온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의 친구들이 스파이더맨을 부르려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반지로 마법을 쓰듯이 원을 그려 스파이더맨을 불러냈는데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이 나타났다고 한다. 원래 마법을 시전한 세계 내의 스파이더맨을 찾아야하지만 멀티버스가 꼬여버려서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져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을 찾아서 데려온 것 같은데 이게 스팟의 능력이 멀티버스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스팟은 원래 자기가 속한 세계 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구멍만 뚫을 수 있지만 멀티버스가 꼬여버려서 여러 세계에 구멍을 뚫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만약 이게 맞다면 MCU가 멀티버스에 대한 설정을 나름 탄탄하게 짜둔 것 같아서 앞으로 MCU가 개봉되면 한번 극장을 가볼까 하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어찌됐든 능력에 대한 부분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스팟이 주인공의 아치에너미가 되는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화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해보면 스팟이 주인공에게 극심한 증오를 품고 아치에너미가 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이고, 얘가 아치에너미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결국 가족, 직장,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스팟이 스파이더맨에게 증오를 표출하는 장면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스파이더맨과 스팟이 서로 웃음기 섞이거나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다가 제압하고, 탈출하고, 사고치고, 수습하는 등 내용을 진행해가는데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며 스파이더맨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이 뜬금없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문제가 아니라, 웃기긴 웃기더라도 주인공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도 심각한 분위기로 찍어서 내용을 더 늘렸다면 스팟의 이 행동이 급발진으로 비춰지지 않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상술한 스팟 연출에 대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전부 마음에 든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다음편이 나오면 극장을 갈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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